노자는 진陳나라 상相 사람으로, 초楚나라의 고현苦懸 여향厲鄕 곡인리曲仁里에서 출생한다. 진陳나라는 예禮를 처음 만든 순舜의 후예가 다스리던 땅이다. B.C534년, 진陳나라는 초楚나라에 멸망한다. B.C501년, 노나라 중도재中都宰 공자(51세)는 진陳나라의 예법을 알아보려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노자를 찾아 원행遠行을 떠난다. ‘장자’의 기록에 따르면, 옛 진陳나라의 상相과 멀지 않은 패沛(회수淮水의 중상류)에서 만난다. 공자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철학을 처음으로 접한다. 예와 인으로 세상을 치유하려한 자신의 인의仁義의 정치와 확연히 다름을 확인하고 공자는 발길을 돌린다. 초나라의 초평왕과 초소왕은 교만과 패악의 상징이다. 초楚나라의 초평왕(B.C528–516)은 아들 세자 건建의 신붓감인 진나라 공주 맹영孟嬴을 첩으로 삼고 세자 건을 죽인다. 세자 건의 스승인 오사仵奢와 그의 큰아들 역시 죽음을 당한다. 오사의 둘째아들인 오자서伍子胥는 오吳나라로 피신한다.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꾀한다. 초평왕이 죽자 진나라 공주 맹영孟嬴의 아들 초소왕이 뒤를 잇는다. 초소왕 역시 해괴망측한 일들을 자행한다. 탐욕에 눈이 멀어 仁과 덕德을 찾아볼 수 없다. B.C506년 오자서는 합려闔閭의 책사가 되어 초나라를 멸망시킨다. 노자는 금수禽獸의 시대상에 절망해 세상을 등진다.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절감한다. 함곡관函谷關에서 윤희에게 ‘도덕경’ 5천 글자를 남겨주고 떠난다. 무위자연의 길을 간다. 노자의 ‘도덕경’은 모든 철학과 사상의 요람이다. 원문原文과 주註로 노자의 숲을 거닌다. 영어로 ‘도덕경’을 향유享有한다.